하루 600건…기본권 짓밟는 '탈탈 털기' 압수수색

입력 2019-04-09 17:37  

작년 21% 늘어 22만건 '사상 최대'
등교시간 아이 앞에서 모멸감 주기도



[ 이인혁 기자 ] 지난 8일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해 막내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 이후 1년간 자택, 사무실 등에 대해 18차례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 경찰 등이 조 회장 주변을 탈탈 털었지만 그동안 한진 일가에 대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결과적으로 수사기관이 무리하게 압수수색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조계에선 이 같은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남용’ 관행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범죄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강제 조치는 필요하지만, 압수수색이 지나치게 잦고 광범위하게 이뤄져 피의자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작년 하루 평균 압수수색 602건

9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발부된 압수수색 영장은 총 21만9829건에 달한다. 전년(18만1040건)보다 21%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매일 602건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셈으로 ‘압수수색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압수수색은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많아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3~2016년 연평균 압수수색 발부건수는 16만6563건에 그쳤다. 이른바 ‘적폐청산’ 명목으로 전방위적 수사가 이뤄진 영향 때문이란 분석이다. 올 1~2월 들어서만 벌써 3만5613건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

범죄 관련성과 상관없이 각종 서류 등을 일체 압수하고 보는 ‘탈탈 털기’ 방식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1992년 부산고등법원은 압수수색 영장 청구서를 작성할 땐 압수할 물건과 수색할 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무차별 압수를 막아 피의자의 방어권을 지키기 위해서지만 현실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구체적인 문서나 파일명을 미리 알 수 없어 다소 일반적으로 기입할 수밖에 없다”며 “현장에서도 관련 혐의가 있을 법한 기록 등은 일단 챙긴다”고 밝혔다.

압수한 물건을 돌려줘야 하는 기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별건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가령 A 혐의로 압수수색을 해 확보한 기록을 장기간 검토하다가 B 등 다른 혐의를 발견하면 새로운 수사를 시작하는 것은 검찰의 오랜 수법이다. 무차별적으로 압수수색을 하면 “없던 죄도 만들어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피의자 망신 주기로 활용

법조계에선 피의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수수색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1월 서울고법은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내용이 모호할 경우 수사기관에 불리하게 해석하는 게 합당하다는 해석을 내놨다. 당시 재판부는 “미리 압수할 물건을 완벽하게 특정하기 어려운 사정은 참작할 수 있다”면서도 “‘혐의사실과 관련된 모든 문서 및 물건’이라거나 압수 목적물을 열거한 뒤 ‘등’을 붙이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압수수색을 할 때 피의자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017년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수사를 받던 고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는 이른 아침 등교시간 전 어린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압수수색을 당해 논란이 됐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피의자 망신 주기나 기죽이기 방식으로 압수수색이 활용되는 면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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